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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윌리엄 윌슨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윌리엄 윌슨]은 에드가 엘런 포우가 1839년에 [어셔 가의 몰락]과 함께 발표한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정체가 혼동되기 쉬우므로 자세히 주의를 기울이며 읽어야 한다.
[내 이름을 윌리엄 윌슨이라고 해 두자. 내 원래의 이름으로 이 깨끗한 책장을 더럽힐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주인공의 정말 이름은 윌슨이 아니다.) 나는 세상에서 영원히 매장되었고 죽음은 촌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타고난 내 고집과 교만한 성격으로 인해 개성이 가장 뚜렷한 인간으로 부각되었다. 차차 나는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든 학우들을 한 손에 쥐고 흔들게 되었다. 이 예외에 속하는 친구는 우연히 나와 이름과 성이 똑 같았다. 나중에 우리는 생년월일까지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 친구만이 공부나 운동경기 또는 싸움에 있어서 나의 경쟁자가 되었다. 나는 윌슨의 도전적 행동에 대해 불쾌했지만 한편 나는 그를 은근히 두려워했다. 사실 그는 나와 기를 쓰고 경쟁하려 들지 않았다. 겉으로 내가 이기는 것 같았어도 사실은 그가 교묘하게 내게 져 줌으로써 정말 이긴 자는 자기라는 사실을 나한테 느끼게 했다.
그는 주로 내 말과 행동을 곧잘 흉내 내었다. 또 복장이며 걸음걸이와 전체적인 몸가짐까지도 나를 따랐다. 단지 한가지 다른 점은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는데 그래도 그 어조는 나의 말투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러한 흉내는 나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내 흉내를 내어 나를 비웃는다는 사실을 다른 학우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입학한지 5년째 되는 해 어느 날 밤 나는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자리에서 일어난 후 등잔을 들고 윌슨의 침실로 조용히 다가갔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한 번 혼내 주려고 별러왔던 것이다.
침대의 커튼을 조용히 걷어올리자 그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다. 가슴이 뛰고 무릎이 떨렸으며 전신이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항상 나를 악착같이 흉내내던 월슨의 얼굴이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결코 평소에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등잔불을 끄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 길로 곧바로 학교 문을 뛰쳐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집에서 몇 달을 쉰 후 나는 이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도 나쁜 습관에 젖어 3년이란 세월을 보람없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의 일들은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면서 도 나는 난봉꾼이 되어 절제 없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어느 해 한 돈 많은 귀족 아들이 입학했다. 도박판에서 나는 처음에 일부러 져 주면서 그를 내 올가미에 걸어 넣었다. 그는 돈을 갑절로 올렸다. 내가 몇 번 거절하자 그는 화를 버럭 냈다. 결국 그는 한시간도 못되어 네 갑절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때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웬 사람이 들어와 방안의 촛불을 다 꺼버렸다. 그는 속삭이는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 사내의 왼쪽 소매 안과 주머니 속에 화투짝을 숨기고 있소." 사람들이 내 몸을 수색하자 감춰 놓았던 화투짝이 금새 들어 났다. 방 주인이 나를 쫓아내었으며 나는 방을 나오는 즉시 옥스퍼드를 떠났다.
그 후 나는 파리로, 로마로 또 비엔나로, 모스크바로 유럽을 유전하며 도망 다녔으나 윌슨은 계속 나를 쫓았다. 나는 점차 술독에 빠졌으며 술기운으로 인해 허세를 부리면서 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로마에서 한 가면 무도회에 참석했다. 혼잡한 속에서 숨막히는 밤공기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공작의 젊은 부인을 찾았다. 그녀는 내게 자기가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미리 내게 알려 준 것이다. 그녀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웬 사람이 내게로 다가왔다. 죽기 전에는 잊을 수 없는 그 진저리나는 속삭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역시 짐작한 대로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가면으로 가장하고 있었다.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놈을 끌고 무도장에서 나와 옆에 있는 작은 방에 몰아 넣은 후 칼을 빼어 그의 가슴을 몇 번이고 찔렀다. 순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놀랍게도 내 앞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고 그 속에서는 피에 젖어 새파랗게 질린 내 자신이 비틀거리며 거울 앞에 선 나를 맞으려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바로 나의 적 윌리엄 윌슨이었던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네가 이겼다. 항복한다. 그러나 앞으로 너도 죽을 것이다. 너는 내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지. 내가 죽어갈 때 바로 너 자신인 내 모습을 보아라. 네가 어떻게 자신을 철저히 파괴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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