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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박사의 성경 바로 읽기]<6> 입다의 딸은 번제물로 죽었나?

성경 번역에 있어서 번역자는 때때로 특정한 해석을 번역문에 반영시키는 경우가 있다. 원문의 내용이 난해하다든지 또는 원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역자는 특정한 해석을 가미시켜 번역하기도 한다.

번역문에서의 이러한 해석적 요소는 때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큰 기여를 할 수도 있겠으나, 어떤 때는 원문의 의도를 왜곡하는 위험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사사기 11장의 한글판 번역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절대다수의 우리말 번역본들을 통하여 사사기 11:37∼40을 읽을 경우,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무모한 서원 때문에 안타깝게도 처녀의 몸으로 번제물이 되어 죽는다. 대표적으로 개역과 표준새번역을 발췌하여 인용해본다.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개역)

“딸은 또 아버지에게 말하였다…처녀로 죽는 이 몸,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실컷 울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딸은 친구들과 더불어 산으로 올라가서,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하며 실컷 울었다…아버지는 주께 서원한 것을 지켰고, 그 딸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으로 죽었다.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생겼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여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것이다”(표준 새번역)

이런 번역들 때문에 한국 교회는 전반적으로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서 죽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그녀가 번제물로 죽지 않았을 거라는 해석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왜곡시키는 일로 매도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중국 교회의 사정은 다르다. 필자가 대만과 미국의 중국인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사기 11:37∼40을 강의해 본 경험이 있는데, 중국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죽었다는 해석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학생들이 그처럼 주장하는 이유를 알아보니, 그것은 중국어 성경에 입다의 딸이 죽었다는 문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히브리어 원문이든 고대의 어떤 번역본이든, 본문 안에 입다의 딸이 죽었다는 문구는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도 한글 성경들은 입다의 딸이 죽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해석적 입장을 번역문에까지 반영하였다.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문제의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여 아래에 제시해둔다.

37. 그녀가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게 이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제게 두 달만 허락하셔서 산 위로 내려가서 저와 제 여자 친구들이 함께 저의 처녀 됨을 위하여 울게 해주세요.” 38. 그는 “가라”고 말하고, 그녀를 두 달 동안 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 여자 친구들과 더불어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됨을 위하여 울었다.

39. 두 달이 지나서 그녀는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서원한 바를 그녀에게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고,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

40. 이스라엘 여자들은 해마다 가서, 매년 나흘을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애도하였다.

사사기 11:37∼40의 히브리어 본문이 어쨌든 간에 사사기 11장의 전체 문맥으로 보아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죽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해당 본문의 히브리어 원문 또는 각종 고대 번역본에 ‘죽는다’는 단어가 없다는 점은 입다의 딸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큼을 입증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라고 하겠다.

입다의 딸과 그녀의 친구들이 애곡한 바는 “그녀의 처녀 됨을 위하여”였다는 표현을 그 자체적으로 볼 때,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라고 해석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입다에게 있어서 무남독녀를 평생 처녀로 보내게 한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었을 것이고, 딸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별히 39절의 “그는 자기가 서원한 바를 그녀에게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고,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는 문장 순서를 통해볼 때, 서원을 행한 결과가 바로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말해서 입다와 같이 인신 번제를 서원할 경우 번제물로 뽑힌 그 사람을 평생 동정으로 보내게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에서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해석상 입다의 딸이 과연 번제물이 되어 죽었는지 아닌지를 밝히기가 쉽지 않고, 또 히브리어 원문에도 ‘죽는다’는 단어가 없는데 이를 번역문에 삽입하여 아예 한 쪽의 해석만 두둔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사사기 11:37∼40의 본문에 대한 우리말 성경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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